W .   먼  지  떨  이   (  @  m  u  n  g  e  _  b  y  e  )

“   오  늘  도   사  랑  하  고   있  어  .   ”

 


“쿠로….”
“…….”
“쿠로-, 쿠-로.”
“으음….켄마….왜…?”
“나 배고파.”




해가 중천에 뜨고도 한참이 지난 일요일 아침. 일주일에 딱 한 번, 매일같이 전쟁처럼 치러지던 출근준비도, 학교도, 운동도 없어 조금은 게으름을 부리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날. 따뜻한 햇살이 침대 옆 벽면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새하얀 이불을 따스하게 내리쬐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쿠로오는 비로소 베개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에 한쪽 눈만을 힘겹게 뜬 채로 깜빡이길 수차례. 영 졸음을 떨쳐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런 그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켄마의 얼굴이 확- 하고 다가왔다. 아아… 오늘 일요일이구나. 미처 머리 회전이 다 돌아가기도 전에 상황파악을 끝마친 쿠로오는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켄마의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무리 시끄러운 알람을 구해와도 죽은 듯이 숙면을 취하는 켄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깨우는 날은 오직 일요일뿐이었다. 큰 눈을 도로록 굴리며 재촉하듯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귀여운 얼굴에, 쿠로오는 얼른 졸음을 쫒아내고자 다른 한 쪽 눈을 연신 비벼댔다. 그 후 켄마, 잘 잤어? 하고 물어오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여느 때와 같이 가벼운 입맞춤이 켄마의 입술에 내려앉고 나서야 둘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오늘도, 둘만의 일요일이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 오 늘 도  사 랑 하 고  있 어 . ”








아직은 잠이 덜 깬 상태로 화장실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가는 쿠로오의 뒤를, 켄마 또한 총총 걸음으로 따라갔다. 평화로운 주말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세면대 위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평상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나뿐인 세면대를 두 사람이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세수를 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양치도구를 꺼내 들어야했다. 물론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이와 관련된 규칙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룰에 의하면 오늘은 켄마가 먼저 세수를 할 차례인지라, 치약이 발린 칫솔을 입에 문 쿠로오는 세수 중인 켄마의 금발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그의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올린 다음 왼손으로 움켜잡았다. 곧 쏴아- 하는 상쾌한 물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화장실 안을 가득 메웠다. 켄마가 세수를 한답시고 세면대 주변을 흠뻑 적시는 동안 그의 머리칼을 잡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으로 양치를 하던 쿠로오는, 어쩐지 묘한 허전함을 느낀탓에 그 원인을 찾으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봤다.




“켄마, 너 또 내 티셔츠 뺏어 입었지.”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두꺼운 옷은 게임을 할 때에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언제나 얇게 입고 다니는 켄마는, 오늘처럼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찾아올 때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새벽에 온기를 찾아 쿠로오의 품 안에 파고 들곤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쿠로오가 입고 있는 티셔츠 속으로 파고들었다. 가 맞는 표현이려나……. 물론 쿠로오의 입장에서는 이런 켄마의 잠버릇이 싫지만은 않았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고나면 본인이 전날 입고 잤던 티셔츠가 감쪽같이 켄마에게로 옮겨져 있는 탓에, 아침마다 이리저리 튀는 물방울을 맨 몸으로 맞아내느라 샤워가 따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추운걸 어떡해.”




그러나 미간을 찌푸린 쿠로오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정작 범인인 켄마는 세수를 끝마치곤 몸을 일으키며 태연스레 답했다. 티셔츠 도둑주제에 뻔뻔스럽기는…. 입 안을 가득 채운 거품 탓에 쿠로오는 웅얼거리듯이 불만을 토로하며 세수를 끝마친 켄마의 머리칼을 놓았다. 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노란 티셔츠는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 자신의 몸에 비해 지나치게 커다란 티셔츠를 입은 켄마는 이어지는 쿠로오의 잔소리를 언제나처럼 듣는 둥 마는 둥하곤 이내 칫솔을 쥐고 하품을 한다.




“하여간에 잠버릇 한 번 고약해.”




그리고 그런 켄마의 모습에, 거품을 뱉어낸 뒤 입 안을 깨끗이 헹구어낸 쿠로오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정확한 발음으로 투덜댔다.




“……쿠로가 할 소린 아니거든.”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켄마가 경멸의 눈초리를 담아 그를 힐끗 노려보며 받아치자, 쿠로오는 곧 부스스한 제 머리를 긁적이며 못 들은 체 했다. 이렇듯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부터 투닥거리기 바쁜 둘은 그 뒤로도 한참을 ‘로션 바르기’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쿠로오의 승리로 전쟁의 막을 내리고 각각 개운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부엌에 들어섰다.


늦은 기상 탓에 점심이라 칭하기에도 늦은 첫 끼를 준비하는 두 사람은 이번에도 암묵적인 룰에 의해 움직였다. 쿠로오가 쌀을 씻고 밥솥에 안치는 동안 켄마는 전날 사온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낸 뒤 간단한 손질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대부분 쿠로오가 미리 요리한 뒤 소분해둔 반찬을 꺼내먹거나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와 같은 간단한 요리로 아침을 대신하지만, 일주일에 딱 한 번, 휴일의 여유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일요일 오후에는 이처럼 둘이서 함께 특별식을 준비했다.


오늘의 특별식은 사케동이었다.

특별식 메뉴는 늘 그래왔듯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는 평일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두었다가, 돌아오는 토요일에 두 요리사의 엄중한 회의를 거쳐 선발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케동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번 주의 영광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귀찮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켄마조차 재료를 손질하는 순간만큼은 열과 성을 다했다. 쿠로오의 것보다는 비교적 작은 앞치마를 허리에 단정히 두른 채, 양파를 슬라이스 하는 켄마의 손길은 무척이나 신중하고도 섬세했다. 어찌나 열심인지 눈물까지 글썽여가며 임무를 완수해내자 이번에는 메인쉐프인 쿠로오가 나섰다. 켄마가 공들여 양파를 슬라이스 하는 동안 미리 끓여두고 있었던 소스에 정갈하게 썰린 양파들이 퐁당, 하고 빠졌다. 그 후 계속해서 쿠로오가 소스 만들기에 열중하는 동안, 켄마는 뿌듯한 마음으로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애꿎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했다.




“켄마, 전기 아까우니까 하지말라했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쿠로오의 잔소리가 켄마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이에 움찔한 켄마는 잔뜩 불만에 찬 표정을 하면서도 비교적 얌전히 냉장고 문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졌다.



“쿠로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봐.”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름 작게 말한 것 같은데, 쿠로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리를 하다말고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리고 그런 쿠로오의 부담스런 시선을 애써 무시한 켄마는, 잔뜩 상기된 마음을 달랠 길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워 애꿎은 냉장고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고등학생 시절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실 사진이야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냉장고에 붙어있었지만, 여전히 이상한 표정을 한 채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쿠로오 때문에라도 켄마는 화제를 전환시켜야만 했다.




“놀이공원 안간지도 꽤 오래됐네.”
“놀이공원? 왜, 가고 싶어? 밥 먹고 갈까?”
“아니 그냥…. 사진보니까 생각나서.”




딱 이맘때쯤 이였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서도 둘의 일상이나 생활패턴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진 둘 사이의 관계를 실감하고자, 어느 날 쿠로오가 놀이공원 입장권을 구해왔더랬다.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코스. 사람 많은 곳은 싫다던 켄마를 설득한 끝에 겨우겨우 놀이공원에 입장한 쿠로오는, 애인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문장을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언젠가 서로의 가족들과 함께 왔었던 어렸을 적과는 달리, 단 둘이서 온 놀이공원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다 여겨오던 상대에 대한 감정이, 어느 샌가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날처럼. 항상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언제나처럼 옆에 서있던 서로가 달라보였듯.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 하나 없는 놀이공원의 모습이 그 날만큼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느껴졌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데이트는 처음인건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주위를 둘러본 쿠로오는 그제서야 둘의 관계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실감했다. 그러자 잔뜩 들뜨고 설레기만 했던 마음에 무거운 감정이 내려앉았다. 자각과 동시에 훅 끼쳐오는 긴장감을 느끼곤 고개를 돌리니 켄마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필요성을 느낀 둘은 정적이 흐르는 것만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마음 한 구석 간질간질한 감정은, 쿠로오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들었고 켄마의 온 몸이 잔뜩 뻣뻣하게 굳어 삐걱대게 만들었다. 하하 호호, 즐거움이 잔뜩 묻은 얼굴들 사이로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멈춰 섰다. 긴급 상황이다. 이를 수습하고자 입을 열면 열 수록 머릿속에 울려대는 위험감지 사이렌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쿠로오는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숨 막힐 듯 한 어색함과 더불어 결국 정적이 흐르고야 말았다. 분명 전과 다른 둘 사이의 관계를 느껴보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처럼 서로를 낯설고 신경 쓰이는 상대로 인식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과연 이전 관계에서의 연장선인 것인지, 혹은 깊고 좁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인지에 대한 고뇌로 매일을 지새우곤 했던 쿠로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영영 부딪히고 싶지 않았던 난관이었다.


연인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매일같이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답은 멀어져만 갔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쿠로오가 고개를 돌리자,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 켄마가 눈에 들어왔다. 켄마…, 귀가 새빨개졌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쿠로오는 지금의 켄마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그런게 지금 상황에 될 리가 없잖아. 쿠로오는 마치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라도 하듯, 자신의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었다. 하기사, 둘 중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도 그럴게, 다른 누구도 아닌 켄마와의 데이트니까. 1분 1초도 아까운 지금 이 순간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가녀린 아기새마냥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켄마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잠시 동안 눈에 담고 있던 쿠로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앞으로 흘러내린 켄마의 머리칼을 빨갛게 물이든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런 쿠로오의 행동에 자신의 발끝만을 응시하고 있던 켄마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켄마의 눈동자에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쿠로오가 가득 차올랐고,




“그럼, 가볼까?”




그런 켄마의 눈을 마주하며, 쿠로오가 아직은 어색한 둘의 호흡을 맞춰가려는 신호를 보내자 켄마는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며 동그란 뺨을 붉혔다. 쿠로오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켄마는 알 수 있었다. 처음 맞이하는 떨림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가슴 한가운데에서 퐁퐁 샘솟고 있는 낯선 감정을 부정하지도 외면하지도 말 것. 눈앞에 있는 서로에게 충실할 것. 쿠로오의 떨리는 눈동자 속에 담겨있는 켄마는, 마찬가지로 떨려오는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고 이에 수긍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언제 어디서나 늘 그래왔듯 그저 평소처럼 나란히 함께 걷고 있을 뿐인데.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란 두 글자가 두 사람을 이렇게나 넓은 놀이공원에 오직 단 둘만이 있는 것만 같노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가 서서히 기울어져 마침내 그 모습을 감출 때까지. 두 사람은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즐겼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켄마를 위해 츄러스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고, 쿠로오의 수차례 반복된 애원에 의해 연인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커플 머리띠를 끼고 돌아다녀도 보고. 무엇보다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도 함께 찍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을 감정, 되돌릴 수 없을 시간, 같지 않을 추억, 그리고 우리. 무엇하나 빠뜨릴 수 없을 만큼 소중했기에 함께하는 순간순간에 충실할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둘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될 이 날을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놀이기구가 마지막 운행임을 알렸다. 둘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자 놀이공원 정문을 향해 걸었다. 노을이 지는 것도 몰랐는데 놀이공원에 입장한 후 어색한 마음으로 나란히 걸어왔던 길에는 캄캄한 어둠이 깔려있었다. 다들 일찍 돌아간 모양인지, 수많은 사람들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찼던 놀이공원의 밤은 어느 샌가 둘의 발자국 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걷는 동안 오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지만 크고 넓은 놀이공원에서 정문까지 걷기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결국 아침과 마찬가지로 둘 사이엔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 길에는 정말로 사람을 어색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끄응, 앓는 소리를 작게 흘린 쿠로오가 결국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켄마를 돌아봤다.




“잠깐 앉았다갈까?”




달빛과 별빛, 그리고 가로등 불빛. 그 아래에서 희게 빛나는 벚꽃 잎을 올려다보던 둘 사이에는 계속해서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함을 탓했지만 실은 이대로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속으로 고민하기를 수백 번. 마침내 결심이 선 쿠로오가 어설픈 휘파람을 불며 슬며시 다가와 나란히 놓여있던 서로의 손을 포갰다. 이에 켄마는 터질 듯이 쿵쾅대는 자신의 심장이 제발 멈추길 바라며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였다. 그러다 켄마, 하고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 켄마는 정말로 한 순간 심장이 멈춰버린 것만 같다 생각했다. 서로의 눈동자에 담긴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고, 포개어진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옅은 향수냄새와 뒤섞인 채취가 훅-하고 끼치자 켄마는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나……,이러다 정말로 쓰러져 버리는 건 아닐까……. 첫 키스는 달콤하지도, 황홀하지도, 종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다만, 온 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려와서. 모든 감각이 태어난 이례로 가장 예민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는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고 머릿속은 마치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쿠로오의 떨리는 어깨 너머로 보이는 만개한 벚꽃 잎처럼, 켄마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조심스레 피어오르던 감정이 한순간 만개하는 것을 느꼈다. 커다랗고 따뜻한 쿠로오의 손. 그래, 지금 이 순간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켄마는 포개어진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마치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 손을 꼬옥 맞잡아 쥐었다. 눈앞에서 바람 따라 흩날리는 벚꽃 잎이 비가 되어 내리는 광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쿠로오를 따라 눈을 감기 전, 켄마는 마지막으로 본 그 장면과 오늘을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때 아닌 봄날의 장마에, 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가로등 아래 벤치에서 비를 피했다.




“헤-, 저게 그렇게 오래된 사진이었나. 말나온 김에 밥 먹고 나서 다녀올까?”
“됐어…이제 곧 해도 지고……. 그보다 쿠로 놀이기구 잘 못 타잖아.”




그 때 나무 붙잡고 토 했지 않나. 과거를 회상하던 켄마가 문득 떠오른 기억을 중얼거리듯 내뱉자 쿠로오는 밥을 푸다말고 또다시 홱, 하고 뒤를 돌았다.




“저기요…, 그건 내 문제가 아니랍니다…?”




롤러코스터를 연달아 10번이나 타는 게 어디 있냐고. 그 때를 회상하듯 금방이라도 게워낼것만 같은 표정의 쿠로오가 볼멘소리를 했다. 아름답고 풋풋했던 추억 속에는 물론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있었다. 보기보다 겁이 없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알았다만, 켄마는 쿠로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스릴에 쾌감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이리저리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들만을 ‘탈 것’에 선별한 켄마는 하루 종일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놀이기구만을 고집했다. 쿠로오 또한 딱히 겁이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미묘하게 반짝이는 어린연인의 눈빛에 홀려버린 탓에 서서히 차오르는 울렁임을 무시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지금 내 옆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매일을 함께하는데. 문득 든 생각에, 쿠로오는 찡그린 미간을 풀고 어느 샌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켄마를 부드러운 눈길로 내려다봤다.




“그땐 우리가 지금처럼 같이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난 알았는데.”
“에, 거짓말.”
“진짜야.”




웃음기 없는 표정의 켄마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영 분간이 가지 않은 쿠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켄마는 이내 그 품에 파고들어 맨 살이 드러난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쿠로랑은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웅얼거리듯 덧붙여진 켄마의 혼잣말에 쿠로오는 픽-하고 웃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스스로가 던진 물음에 고개를 가로 저은 쿠로오는 자신의 사랑스런 연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귀 뒤로 넘겨준 후 부드럽고 말랑한 핑크빛 뺨에 입을 쪽- 맞췄다. 그러자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도 여전히 그 날 그 순간처럼 부끄러워 눈을 내리까는 켄마가 있어, 쿠로오는 그런 그를 번쩍 들어 올려 부엌 선반에 앉히고 장난스레 웃었다.




“켄마, 배 많이 고파?”




선반을 짚고 서서 두 팔로 켄마를 가두다시피 하곤 은근슬쩍 가까워져 오는 얼굴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켄마는,




“밥…식을 텐데…….”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앞을 가로막고 선 다부진 어깨를 살짝 밀어냈지만,




“괜찮아, 새로 퍼줄게.”




여러 의미로 꿈쩍도 않는 쿠로오에 한숨을 쉬곤 그 얄미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다음 주엔 수플레 팬케이크랑 애플파이야.”
“응…….”




환기 차 열어놓은 창문으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 들어와 또다시 두 사람의 마음을 간질였다. 이윽고 서로의 눈동자에 들어선 서로가 천천히 둘 사이의 거리를 줄여갈때 즈음. 살랑대는 바람결에, 마음에. 그때 그 시절 풋풋했고 수줍었던 둘의 추억이 팔랑대는 소리가, 입술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만큼이나 따뜻하고도 평화로운 오후를 가득 채웠다. 여울과도 같은 감정선을 가졌던 그때의 두 소년은 어느 덧 깊고 넓은 호수와도 같은 잔잔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서로에게 느끼는 소중함과 특별함이었다. 매일을 함께해도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애틋한 서로를 향해, 두 사람은 꽃피는 봄의 풋사랑인 동시에 한여름과도 같은 뜨거운 사랑을 했던 열일곱, 열여덟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원할 약속을 속삭였다.




언제나 지금처럼 사랑하자.


우리는 여전히,
나는 오늘도 너를,




“사랑해.”




나의 아름다운 연인아.




- End -




W .   먼  지  떨  이   (  @  m  u  n  g  e  _  b  y  e  )

드디어 첫 합작이 끝났어요!!
편식하는 편이라 일상로맨스물은 첫 도전이었고,,아직 돕바를 입고다닐때 쓴 글인데 뒤늦게 로맨스물 뽐뿌와서 엄청 보고있습니다...
연애는...저대신 쿨켄이 하겠죠....뭐...ㅋㅋㅋㅋ
여튼 좋은그림 그려주신 파트너님과 주최님께 감사합니다! 올해는 꼭 4기를 볼수있길...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