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   쿠  잉   (  @  M  e  l  l  i  f  l  u  o  u  s  _  d  a  y  )

M  O  N  S  T  E  R




「 네가, 괴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








M O N S T E R . 몬 스 터








0.5 들어가는 이야기




마을의 노인들은 때가 되면 사라지는 일이 잦다. 아니, 사라진다는 말은 마을의 표현을 빌리면 불경스러울지 모른다. 장로님들은 그들만의 회의를 통해 자신들과 다를 바 없이 늙고 힘없는 노인을 선택하고,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두 번까지도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의 집에 방문해 노인을 인도한다. 노인이 집 밖으로 나오면 마을의 비보를 뜻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섯 번의 종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한다. 창문에도 커튼을 치고, 노인이 가는 길을 볼 수 없도록 꼭꼭 눈을 가리며 노인의 인도가 끝나 다시 종소리가 울리길 기다린다.


그리고 모든 인도가 끝났음을 알리는 한 번의 종소리가 마을에 다시 울리면 마을의 어른들은 어두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노골적인 한숨을 쉬며 집 밖으로 나와 역 십자가가 붙은 노인의 집을 안쓰럽게 바라보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노인의 끝이 죽음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이 좁은 마을은 물론 근처 숲에서 조차 시체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이 마냥 죽기 위해 인도 되었다고 하기엔 노인을 부양하는 집은 낯빛이 어두워질 뿐, 반발하는 이는 하나도 없던 탓이었다. 다만, 어른들은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듯,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삼일 간의 추모기도 시간을 묵묵히 지키며 인도된 노인에게 순교자와 같은 대우를 한다.


하나 둘, 늘어가는 역 십자가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의심 가는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순교자와 같은 대우가 이미 없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원초적인 의문과 결국 늙고 힘없는 노인들이기에 어디에선가 죽음을 맞이하고 마을의 입을 줄이려는 게 아닌가 싶은 비윤리적인 생각은 어린아이들에게도 해당됐다. 나도 그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인도 현장을 훔쳐보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 몇 번 모두 어른들께 잡혀와 하루 종일 밥을 굶는 등의 혼이 났을 뿐이었다.


내가 그런 짓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나는 그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십자가의 의미까지 모두 알아버리게 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어른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복잡한 시선을 피하며 인도된 노인에게 모든 경외를 바친 이유까지도. 알아버리고 말았다.








1.0 마주한 이야기




죽은 자를 위한 추모. 삶의 감사함과 죽음을 강요한 것에 대한 속죄. 힘없는 자들의 신에 대한 반항. 그 모든 것이 엇갈린 기도와 역 십자가. 그리고 희생에 대한 마지막 죄책감을 덜기 위한 순교자라는 마지막 꼬리표.


성인식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나는 장로님들에 의해 인도되었고, 어렸을 때는 그렇게 가고 싶어 했으면서도 발을 들일 수 없던 숲속으로 향했다. 숲의 안쪽으로 가기 위해 몇 그루의 큰 나무들을 지났고, 겨우 햇빛 한 줌 쏟아지는 깊은 숲의 공터에서 발걸음은 멎었다. 장로님은 밧줄보다 단단하게 붙들었던 내 팔을 놓은 대신 강제로 무릎을 꿇린 채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숲속으로 사라졌다.


어두침침한 숲 속에 혼자 남아 장로님이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반사적으로 몸도 일으키려 했으나 문득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굳었다. 굳어버렸다. 장시간 무릎을 꿇고 있던 것도 아니고, 다리가 저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왠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했다. 움직인다는 명령을 거부하는 몸에 뒤늦게서야 서늘한 본능이 목덜미를 스친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이 슬슬 불어오는 가을. 겨우 한쪽 눈을 찌르는 한줌의 햇빛. 시야 저 멀리서 간신히 찾아낸 작은 오두막. 숨도 뜻대로 쉬어지지 않아 잘게 떨리며 뚝뚝 끊기는 호흡이 몸을 긴장하게 만든다.




「 저, 저……. 」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잔숨이 목구멍 너머에서 소음을 내길 거부한다. 푹 숙여버린 고개에 겨우 움직이는 눈동자에 누군가의 다리 일부가 비춰진다. 지독한 소름이 피어올랐다.




「 노인은, 더 이상 없어? 」




금방이라도 푹 꺾일 것 같은 고개를 들어 보이는 건 뿌리가 내려온 금빛 머리칼과 그보다 더 깨끗한 색의 황금색 눈동자. 젊음을 논하기 이전에 앳된 이목구비와 생기가 없는 외모. 이질적인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놀라울 정도로 어두워진 스산한 풍경은 뚝뚝 떨어지는 식은땀이 풀밭을 굴러가는 소리를 지나치게 증폭시킨다. 입을 열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쥐어짜낸 목소리가 형편없는 소리를 낼지라도 겨우 목의 진동이 울리려는 순간이었다.


종소리가 들린다.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소리가 귀에 박힌다. 그리고 숲 너머에선 기분 나쁜 목소리의 합창이 들린다.




「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어린 양에게 순결과 성령이 함께 하기를……. 악에서 지켜주시고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권능과 영광의 부름이 함께하소서……. 」




나는 무심코 그 희미한 소리를 더듬어 기도문을 읊었다. 울음기도 없는 메마른 위로에 목구멍 너머에선 대답 대신 간신히 쥐어 짜낸 신음이 넘실인다. 나는 눈앞의 황금색 눈과 시선을 맞추고 이성으로 깨달았다. 이건, 나를 위한 추모기도다.








M O N S T E R . 몬 스 터








「 노인은, 더 이상 없어? 」




얼굴을 구긴 네가 또 한 번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답을 하긴 포기했다. 노인들이 더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아이가 태어나도 축하의 말이 없고 누군가가 죽어도 인도가 아닌 이상 추모의 말을 건네는 일 따위도 없다.


답하기를 그만 둔 입술이 불안하게 맞물려 있자니 너 역시 답을 듣길 포기한 눈치다. 추모 종소리가 울린 이상 더 기다릴 건 없었다. 난 죽는다. 이유를 물을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본능에 의존한 결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어디선가 피 냄새가 넘실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일어나. 」




네 목소리에 한숨이 섞인다. 속살이거리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작지만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너는 맹렬한 기백의 눈빛만 아니면 다 쓰러져가는 노인과 다를 바 없이 무기력해 보였다. 반쯤 뜨여진 눈은 피곤한 기색이 가득하고 파리한 안색도 앳된 인상에 비해 생기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말에 강압이 없음에도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것 같은 위압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간신히 오른쪽 다리를 폈지만 오래가지 못해 다시 무릎을 꿇었다.


어느샌가 종소리가 멈추고 끔찍한 고요함이 남았다. 나는 그 널따란 공간이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애써 납득했다.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날 보던 네가 팔을 붙잡고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어른들이 아이를 달랠 때처럼 가볍게 들리는 다리의 모양새가 눈에 밟힌다.




「 장로들이 아무 말도 안 해줬어? 」
「 …………. 」




대답을 하기엔 어쩐지 비참함이 먼저 느껴져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다. 생기 없는 얼굴에 그늘이 진다. 네 표정은 딱히 어떻다고 정의 내릴 수 없이 복잡해졌다.




「 …비가 올테니까, 일단 들어가. 」




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곤 그 이상의 접촉을 그만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자가 등을 돌리자마자 널따란 공간을 지나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네가 언뜻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던 것도 같았지만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들락이는 가슴 어딘가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지만 너를 마주하는 공포보다는 참을만했다. 몇 번인가 길을 헤매고, 네가 잘 달리던 내 팔을 붙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마을로 돌아가려 발을 멈추지 않는다. 길을 찾기 위해 자리에 멈춰 섰을 때도 뒤는 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핏기 없는 안색에 사나울 정도로 넘실거리는 맹렬한 황금색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겨우 눈에 익은 익숙한 길을 찾았을 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둑지던 숲을 모조리 가려버린 먹구름이 사납게 일렁인다. 곧 빗줄기가 쏟아지고 나무들 사이로 찰박이는 흙탕물을 그대로 맞고 있던 참이었다.


오늘은 내 18번째 생일이다. 성인이 되는 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나를 위한 추모기도를 시작한다. 그 안엔 아까는 들리지 않았던 울음소리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씹어 삼키는 화도 있었다. 마지막 나무를 지나치고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마침내 마을로 들어섰다.


숲과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집. 때가 좋게 종소리가 멎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이 다시 나올 게 분명했다. 가장 먼저 문이 열린 건 우리 집이었다.




「 엄마! 」
「 …………테츠로? 」




나는 사람의 눈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 테, 테츠……? 테츠로……? 」
「 엄마, 저 다 젖었어요. 집에 들어가서……. 」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엄마는 지나치게 숨을 빠르게 쉬었고, 어깨가 수십 번 들썩이더니 곧 눈을 까뒤집고 끼기기긱거리는 끔찍한 소리를 내질렀다. 비명에 마을 사람들도 급히 문을 열었고 내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달려오다가도 그 옆의 내 몰골을 보고 멈칫 하고 마는 거다.




「 아, 아저씨……. 저희 엄마, 어, 엄마 왜 이러세요……? 」
「 너, 너……. 」
「 아줌마, 아저씨……. 」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화가 서린다. 얼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악의 속에서 옆집 아저씨는 한달음에 달려 나와 엄마를 부축했다. 망설임 없이 집안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온갖 어두운 감정을 다 가지고 나를 돌아봤다.




「 저 놈 때문에 우린 다 죽을 거요!!! 」
그게 신호탄이라도 되는 말이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 저가 살자고 혼자서 도망쳐 나오다니……. 」
「 거기서 어떻게 도망친 거지? 」
「 그게 뭐가 중요하겠소, 결국 우린 다 죽은 목숨일 텐데! 」
「 저 놈을 다시 바쳐야 하오! 」
「 어미가 이미 돈을 받았어요. 다시 가지 않으면 죽여야 해요! 」
「 빨리 저 놈을 잡으세요! 」
「 이미 분노하셨을 거야……. 」
「 지금이라도 바치면 괜찮을 거예요! 」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멸시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돌 몇 개가 날아와 핏물을 튀겼다. 눈앞을 물들이고 점점 가라앉는 기분만큼 발치엔 피와 비가 섞인 웅덩이가 생겼다. 새빨갛게 핏발이 선 눈으로 날 원망하고 잔망스런 혀로 저주의 폭언을 들이붓는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와중에, 나는 불현 듯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을 떨치려 애를 썼다. 웅덩이가 점점 더 넓게 고여, 내 발까지 적시기 전에 나는 그토록 빠져나오고 싶던 숲으로 다시 발걸음을 향했다.


황금색 눈동자를 창백한 얼굴에 박아 넣고 날 쫓아올 거라 생각했던 너는 날 쫓지 않았다.


하지만 삭막했더라도 같은 마을의 사람들은 돌과 나무막대기, 삽 등을 들고 날 쫓는다. 어느 쪽이 나쁜 건진, 이미 판가름 나 있었다.


먹구름 사이에서도 아직 완전히 해가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던 시간이 지나고, 어스름이 집중을 해야만 겨우 앞을 분간할 수 있는 밤이 되어서야 마을 사람들을 완전히 따돌릴 수 있었다. 그 사이 피는 빗물에 씻겨가고 몸은 끔찍이도 차가워져,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나는 선택지도 없이 나무둥치로 기어들어가 그 이상의 추위를 느낄 수 없도록 몸을 잔뜩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열여덟, 성인의 생일인데, 갈 곳도, 엄마도, 마을 사람들까지도 잃어버렸다. 말 그대로,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맞는 것만 같다. 성인식을 마치고 돌아오면 선물을 주겠다던 엄마는 그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쏟아져 내리는 비와 비수가 되어 꽂힌 폭언들 사이에서 쓸데없이 깊게 파고드는 생각에 빗물에 젖은 신발을 벗고 맨발을 끌어당긴다.




「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




그나마 남아있던 손의 온기로 겨우 녹아내리는 발 때문일까. 서서히 몸의 긴장이 풀린다. 설움과 배신감, 공포에 젖어 입김으로 무릎을 녹이다 결국 눈을 감기로 결심했다.


잠이 들었는지, 그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뿐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몸은 좀 전보다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이대로는 저체온증 따위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나무둥치에서 나가 마을로 몰래 들어가 어디서든 잠을 자야할지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눈앞에 흙탕물이 튀긴다. 사람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굳은 몸을 천천히 들어 보이며 그 얼굴을 확인한다.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써서 제대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너. 지금껏 마을의 노인들이 인도당한 이유이자 근본, 뿌리. 어두운 밤중에도 명백히 보이는 황금색 눈동자에 손에 닿는 나무뿌리를 반사적으로 쥐었다.




「 밤은 추워. 」




네가 손을 뻗는다. 나를 일으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무 뿌리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지 못했다. 까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톱 몇 개가 부러진다. 지독한 공포와 설움이 다시 터져 나오려한다. 너는 끝가지 않은 손을 거두고 나를 쳐다봤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추위에 얼어붙은 입술이 제대로 다물어지지도 않는다. 남자의 눈초리는 피할 수도 없이 마냥 마주하는 수밖에 없었고,


내 기억은 거기에서 끝났다.








M O N S T E R . 몬 스 터








눈을 떴을 때, 집이 아닌 다른 오두막의 침대에 누워 있음에 쿠로오가 벌떡 일어났다. 깨끗하지만 낡은 티를 감출 수 없는 시트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안. 기억은 나무둥치에서 끊겨있다. 거기서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가, 소년을 만나서……. 만, 나서…. 반사적으로 일어난 탓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감기 따위가 아니길 바라며 쿠로오는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는 생각을 그만뒀다. 입고 있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좀 더 짤퉁한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다. 신발도 없다. 하지만 왠지 불안감이 들끓어 맨발로 문을 박찼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소년. 제 옷가지를 들고 있는 소년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 아, 일어났……. 」
「 뭐, 왜……. 」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목구멍에서 온갖 혼란의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소년이 말을 멈췄다. 그건 쿠로오의 표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골적인 혐오로 가득 찬 얼굴에 소년은 말을 끊고 한 발짝 더 앞으로 왔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쿠로오가 그런 남자를 애써 무시하고 달려갔다. 맨 발에 돌이나 나뭇가지 등이 밟히고, 상처도 났다. 거기에 축축한 흙도 스민다. 소름이 온 몸에 돋았다.




「 멈춰. 」




겨우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닿았을 때, 문득 쿠로오가 소년의 말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발의 상처가 몸으로 올라온다. 찌르르한 고통이 퍼졌다. 데인 듯 몸도 홧홧거린다. 묶인 듯 꼼짝할 수 없는 몸은 남자를 향해 다시 돌아볼 수도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멈춰버린, 숨을 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 바보야? 발 다쳤잖아. 」




멈춰 선 쿠로오를 향해 다가 온 소년이 옆구리로 손을 올리더니 그대로 들쳐 맨다. 짐짝 마냥 엎어져 다시 소년의 오두막을 가는 길은 끔찍하게 길었다. 사실 소년은 쿠로오에게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쿠로오의 입장에선 죽음과도 같은 인도를 당한 것도 사실이다. 쿠로오에게 소년의 존재 역시 죽음과도 같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소년은 지나치게 신비롭고, 또 거칠었다. 소년의 행동이 지나치게 상냥한 것 같지만서도 긴장감에 목울대는 연신 너울거리고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버린 다리는 본능적으로 덜덜 떨린다.


뭉실뭉실, 손에 쥐일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공포와는 또 다른 추상적 느낌이 답답함을 키워가는 것 같다.


소년이 쿠로오를 다시 침대에 눕힌다. 훤히 보인 발바닥에 흙과 상처가 뒤섞여있다. 소년은 수건을 적셔와 발을 닦아내더니 흉하게 벌어진 상처를 보고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 마을 사람들한테, 쫓긴 거지? 」
「 …………. 」
「 대답하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난 아무것도 안 했어 」
「 ……노인들을, 죽였잖아. 」




단순하게도, 쿠로오는 해치지 않았다는 납득되는 말에 완전히 긴장을 놓아버린 건지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 말엔 조금 울컥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한 몸과 빳빳하기만 했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진 것도 한 몫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년이 자신의 발을 닦아주는 행동은 공포감을 느낄 수 없도록 조심스러운 손길임을 쿠로오는 알고 있었다.




「 ……장로들한테 아무 것도 못 들었어? 」
「 나는, 어제가 18살 생일이었어. 성인식을 하는 줄 알았고. 」




쿠로오는 온갖 섞여드는 감정을 억누르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 하려 애썼다. 도대체 자신이 뭐에 불안해하는 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발바닥의 상처가 그나마 이성을 잡아주는 것만 같았다. 쿠로오가 감정을 억누르려 턱을 당길 때마다 소년의 표정은 미묘하게 바뀌어간다.




「 근데 내가 여기로 오자마자 종소리랑 기도문이 들렸어. 그건 분명 노인 분들이 인도되는 동안 집 밖으로 나와선 안 된다는 종소리야. 기도문은 노인들의 추모를 위한 거고. 」
「 그래. 」




소년의 입술 한 쪽이 묘하게 호선을 긋는다. 아니, 그건 호선이라기보다 일그러짐이었다. 무력하게 뜨여진 황금색 눈동자가 쿠로오를 마주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하얀 팔뚝을 들어 제 얼굴을 지그시 눌러 보일 뿐이다.




「 도망쳐서 마을로 돌아가니까 엄마는 날 보고 기절했어. 」




이걸 말 할 때 쿠로오는 숨이 턱턱 막혀옴을 느꼈다. 가슴 속을 날카로운 것으로 헤집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인 뒤집힌 눈동자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잠시 입술이 경련 일으키듯 잘게 떨렸지만 소년은 그걸 모른 척 했다. 쿠로오 역시 그런 적 없었단 듯 입술을 혀로 축이고 황동색 눈동자를 꾹 감았다. 마치 그걸 지워버리려는 듯.




「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돌을 던졌어. 다시 바쳐야 한다고, 나 때문에 다 죽을거라고. 어, 엄마가… 돈을, 받았다고……. 」




기어코 쿠로오는 입술을 깨문다. 설움이 몰린다. 모든 화살이 저에게로 향해 텁텁한 공기를 형성했다. 단순한 인도 따위로 표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건 마치 양 같은 가축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18년간 철썩 같이 믿고 자랐던 마을에 대한 배신에 몸서리친다.




「 노인들은 내가 죽인 게 아냐. 원래는 노인을 이곳까지 데려온 뒤 장로들이 죽인거지. 」




지긋 눈을 감은 소년이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첫 문장의 배신감에 쿠로오는 제 마을에 대한 애정이 순식간에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런 쿠로오를 보고 잠시 말을 끊은 소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쿠로오의 표정을 찬찬히 살핀다.




「 …자, 장로님들이……. 왜……? 」
「 ……내가 무서우니까. 노인들처럼 죽일 수 있었다면 진작 그랬겠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 」
「 …………. 」




황동색 눈동자가 일렁인다. 무겁다,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 것 같다. 쿠로오는 무심코 팔을 허우적거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제 팔은 얌전하게 침대에 있을 뿐이었다. 소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 괴물을 없애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격리거든. 하지만 죽일 수 없으니까 차선책으로 나한테 제물을 바치는 거야. 」
「 제, 제물이라니……. 」
「 마을에서 쓸모없어진 노인들을 죽여 나한테 바치는 거지. 」
「 그런 걸 왜 받아! 」




결국 쿠로오는 큰 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해 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터무니없는 인신공양이다.




「 살아야 하니까. 」
「 남의 목숨으로 산다니……. 」




그 혐오와 혼란을 가득 담은 말꼬리에 소년은 어딘가 슬픈 얼굴을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그 찌꺼기만 남은 자신은 구석까지 몰아간다. 모든 이면을 뒤집어씌우고, 괴물이라 불리며 배척당한다. 소명한 눈동자가 저를 비추고 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생기 없는 눈동자만 빛나는 모습은 괴물, 그 자체로 불리는 저다.




「 그, 그런 건, 사는 게 아니야. 죽는 것만 못하고……. 아니, 그 전에 그럼 너 때문에 죽는 게 맞잖아. 」




쿠로오는 당장이라도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손이 차가워지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아도, 소년을 노려보고 숨을 몰아쉰다. 소년이 쿠로오에게 다가가기를 포기한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금색 눈으로 쿠로오를 볼 뿐이었다.




「 네가, 죽인 거잖아. 」
「 ……같은, 괴물이라면. 만일 괴물이었다면, 이런 날 이해했을 거야. 」




조금 물기가 베어든 것 같다. 축축하고 학대받은 것 같은 말투다. 쿠로오는 입에서 절로 툭툭, 소리를 내며 내뱉어지는 것 같은 숨도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데. 소년은 지나치게 시무룩해서 더 이상 반박하기를 그만뒀다. 대신 쿠로오는 침대 구석으로 기어들어갔다. 소년은 자신을 해칠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생리적으로 가슴 깊이 넘실이는 불안감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년의 그 사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난 괴물이 아니야. 」








2.0 비춰지는 이야기




코즈메는 우울해졌다. 마을의 장로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인간과 마주한 것은 제물로 바쳐지는 노인들을 빼곤 쿠로오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지금은 코즈메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다시 제 마을로 돌아 가버렸다. 제 목소리도 잊을 만큼 길고 긴 시간 동안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 대화가 몇 십 년이란 시간도 잊게 만들 정도로 아주 길었단 점에서 코즈메는 나름의 만족을 하고, 쿠로오도 곧 마을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괴물이 되었다고 상처 받지 않는 건 아니다.
괴물이 되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괴물이 되어서, 마을에서 쫓겨난 뒤로, 줄곧 외로웠다. 저를 쫓아낸 마을 사람들이 죽도록 미웠다. 마을에서 바쳐진 노인들의 피를 마실 생각도 없었으면서 오기로 마셨다. 사람의 피는 달콤하고 황홀하지만 사실 그건 복수에 의한 극약 같은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의 노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정작 살인마라고 불리어야 하는 건, 저가 아닌 마을의 장로들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 인간 」 이란 틀 안에서 모든 죄를 무마시킨다. 무죄. 평범함. 모두가 똑같다는 울타리 안에서의 손가락질. 그리고 자신은, 괴물. 악마. 광대. 비웃음 받고, 손가락질 받으며, 모든 죄를 떠맡는, 마을의 괴물.


그래도 노인들을 죽이지 않았다. 살기 위해 마셔야하는 피의 양도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 보냈는데, 흡혈 충동도 참고 다시 인간들의 울타리 안으로 보내줬는데. 한 번 울타리 바깥으로 밀쳐진 사람은 사람이 아닌 괴물. 피를 빨린 팔뚝의 두 송곳니 자국은 부정한 증거로, 피를 빨려 다소 창백해진 얼굴은 괴물과 내통한 증거로. ─모든 것들이 괴물로, 눈물도, 피도. 모든 체액이 괴물의 것으로, 그리고 다시 마을로 향할 괴물의 분노의 경고로 남기어져서. ……사람들은 직접 인간을, 인간의 손으로 죽였다. 피를 빨렸단 이유로. 괴물과 함께 있었단 이유로. 괴물이라는 변명 하에. 저들이 살기 위해서.


다시 마을로 뛰어 간 네가 마을에 도착하기엔 수 십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또 다시 들키기까지 몇 초. 사람들이 분노하기 까지 또 몇 초. 죽음으로 몰아가기까지, 마지막 수 십분.




「 죽음, 까지……. 」




수 십분. 인간이니까,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는 또 다시 밤이 되어서야 올 것 같다. 그 시간 동안은, 혼자 두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몰랐다.








M O N S T E R . 몬 스 터








겨우 하늘이 어두워지고, 끔찍이도 싫은 고뇌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코즈메는 다 쓰러지는 오두막을 나섰다. 진득하니 비가 오는 축축한 날씨지만 오히려 이걸 기다리느라 밤을 선택했다. 이쯤이면, 나무둥치에 기어들어가 혼자 훌쩍이는 것도 다 씻겨졌으리라.


코즈메는 망토에 가까운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때때로 머리 위에 무겁게 차오르는 빗물들을 털어내며 숲으로 들어갔다.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속눈썹에도 맺힌다. 몇 번인가 아주 느릿하게 금색 눈동자를 깜빡인 후에, 코즈메는 그 나무둥치에 다시 도착했다.




「 또 엄마가 나를 보고 쓰러졌어. 」
「 다 울었어? 」
「 옆집 아저씨가 곡괭이로 내 눈을 찌르려 했어. 」
「 이번엔 후드도 들고 왔어. 」
「 장로님들은 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했고, 」
「 집엔 야채수프도 끓여놨고. 맛은 보장 못하지만. 」
「 앞집 아저씨가 가장 먼저 나한테 돌을 던졌어. 」
「 집만큼은 아니더라도 따뜻하게 먹고 잘 수는 있을 거야. 」
「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다 나한테 돌을 던졌어. 」




빗소리가 겹쳐간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쿠로오가 드디어 얼굴을 든다. 다 젖은 옷 사이론 새로 생긴 상처와 멍이 보인다. 이미 한쪽 팔이 거의 다 푸르딩딩하게 물들은 팔을 보고 코즈메는 쿠로오의 몸 위로 후드를 담요마냥 덮어준다. 추위 때문인지, 충격 때문인지 쿠로오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 어렸을 때 같이 놀던 친구도, 날 따르던 꼬맹이들도. 」
「 가자. 」
「 ……있잖아, 난 괴물이야? 」
「 아니. 인간이야. 」




쿠로오의 물음에 코즈메는 단언한다. 괴물은 상처에 울지 않는다. 이렇게 슬퍼하고 충격에 떨지도 않는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입술을 물어뜯지도 않는다. 그저 찬 설움을 삼키고 저주의 말들을 삼키며 독을 품을 뿐이다.




「 아무리 그래도 넌 인간이야. 」




그리고, 인간이란 말을 내뱉는 걸 힘들어해서, 인간으로서 돌팔매질 받는 것 마저 질투한다.




「 ……이런 걸 견뎌 온 거야? 」
「 아니. 무시했어. 」
「 나는, 난……. 잘 모르겠어. 아직도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질 않아. 」
「 원래 그런 거야. 가장 마지막에 소속 돼 있었던 곳이니까. 」




뭐든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겠지. ─하고, 코즈메는 새빨간 혀로 이죽거린다. 인간이 질투난다고 이렇게 이죽대는 놈이었나, 싶을 정도로 비뚤어진 말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솔직히, 위로해 줄 마음도 없었지만.




인간이 죽도록 싫으면서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삶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당연히 불가능이지만.




「 가자. 」




그래도 역시 죽이는 것만큼은 내키지 않아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것도 무리다 싶어서, 코즈메는 쿠로오를 일으킨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굳은 다리를 질질 끌고 다시 그 오두막으로 돌아가면서, 쿠로오는 몇 번이나 입 밖으로 토해지는 숨을 삼키려 애썼다. 얼굴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을 핑계 삼아 몇 번이나 얼굴을 문지르며 툭툭 튀어나오는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기도 했다.








M O N S T E R . 몬 스 터








아무런 방해도, 혼란도 없는 1주일이었다. 근근이 장로들이 찾아와 코즈메에게 경고를 하는 모습을 볼 순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쿠로오가 먹는 야채나 고기 따위를 놓고 사라지곤 했다. 쿠로오에게 코즈메는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연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코즈메에게 쿠로오는 더할 나위 없는 애증의 존재가 되었다.


코즈메의 눈을 피해 장로들이 쿠로오에게 올 때면 그들은 무언가 저주를 퍼붓거나 자살 따위의 경고를 하지만 그 시간동안 마을에 대한 미련한 생각을 모두 정리한 쿠로오는 장로의 말을 모두 무시했다. 그 마을은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머릿속에서 알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마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쿠로오는 코즈메의 집으로 가게 된 직후 장로들이 코즈메에게 득달같이 달려들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도저히 다시 정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 쿠로. 」
「 응. 」




껍질 콩을 까던 쿠로오가 코즈메의 부름에 답한다. 이제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엄마나 마을 사람들이 아닌 코즈메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 오늘은 밤에 나오지 마. 」
「 왜? 」
「 장로들한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말할 거니까. 」




코즈메는 언제나 쿠로오가 장로들과 엮이지 않기를 바랐다. 코즈메가 마을에서 쫓겨 날 당시 장로들은 추방을 동의한 청년들 중 하나였다. 인간이라는 울타리를 만든 사람들. 자신을 내쫓고, 괴물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둔 사람들. 쿠로오는 불과 일주일 전, 마을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생긴 멍 등의 상처를 꾹꾹 눌러보고 그 아픔에 눈을 찡긋거리다 이내 코즈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직도 아파? 」
「 아니. 거의 다 나았어. 」




오늘따라 끝이 내려가는 코즈메의 말투에 쿠로오가 표정을 구기는 것으로 물음을 대신한다. 혹시 쿠로오가 추울까, 난로를 피우던 코즈메가 느리게 쿠로오를 쳐다본다. 그리고 버릇처럼 눈을 꾹 감았다가, 느리게 뜬다. 황금색 눈동자가 그 언제보다 소명하다. 코즈메의 모든 행동엔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 그걸 일주일만에 알았다. 쿠로오는 고양이에게 교감하듯 코즈메와 눈을 맞추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 그냥, 기분이 좀 그래. 」




그 교감에 답하듯 코즈메가 입을 연다. 하지만 쿠로오는 알았다. 뭔가, 폭풍전야 같은 날. 코즈메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자신. 쿠로오 테츠로.








M O N S T E R . 몬 스 터








추측은 절반이 맞았다.




「 아아아아아아악─!!! 」
「 우리가 그래서 당신을 여기에 가둔 겁니다. 」
「 괴물……. 」
「 괴물. 」
「 괴물. 」
「 괴물. 」
「 괴물. 」




쿠로오에게 가해지
는 위협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쿠로오에게 또 한 번 경고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말은 진심이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왜 잊고 있었을까. 코즈메는 단 한 번도 야채수프에 빵을 찍어먹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밥을 먹지도 않았고, 굳이 자지도 않았다. 괴물. 괴물은 밥을 먹지 않는다.

집 앞에 무언가가 흩뿌려지는 소리가 난다. 땅에 물을 적시는 것처럼, 피가 적셔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괴물. 그래, 괴물. 괴물은 피를 마신다. 자신은 그 피를 위한 제물이었다. 수많은 노인들도 그렇게 희생되어갔다. 괜히 순교자라 불린 게 아니다. 괴물의 분노를 막기 위한 말도 안 되는 인신공양.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도 안 되었던 마을의 묵언 규칙.


장로들은 저주의 말을 퍼붓고, 바깥에선 여전히 희미한 신음소리와 무언가가 적셔지는 소리가 난다. 이 문을 열면 연인 같은 사이로 지냈던 괴물이 피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건 사실 일 것이다. 쿠로오는 그걸 알았다. 자꾸만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두통도 함께 온다. 애써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괴물. 하지만 사람과 같이 살았던. 인간에 의해 쫓겨난. 그 애처로운 타이틀을 생각한다. 일주일간 같이 살았던 괴물은 인간에게 부정당했다. 우리가 양이나 돼지 등을 먹는 것과 다를 것 없이, 피를 마신다. 가축을 도살하는 수 보다 괴물이 마시는 피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그 먹이가 인간이라서. 먹이사슬 최고층에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위치라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정말 애처롭다고 생각되는.




「 괴물……. 」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끝나고, 잠시 동안 평화가 찾아온다. 앵앵거리던 환청도 멈췄다. 비명과도 같이 귀를 긁어대는 소리도 멈췄다. 정적이 찾아왔다.




「 미안해, 괴물이라서. 」




그 정적 끝에 문 너머의 코즈메가 쿠로오에게 말을 건넨다. 침대에서 기어 내려온 쿠로오가 문 앞에 바짝 다가간다. 코즈메의 목소리에 물기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쿠로오가 아니다. 괴물이 울 수 있던가. 피폐해진 정신들 사이로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자 별별 맥 빠진 생각이 다 든다. 쿠로오는 픽픽 웃었다.




「 너한테 한 소리 아닌데. 」
「 그래도. 미안해. 」
「 미안하면 들어와서 수프 끓여줘. 」
「 …………. 」
「 아니다. 내가 끓여줄게. 켄마 네가 끓인 것보단 내가 끓인 게 맛있잖아. 」
「 …………. 」
「 거기 춥잖아. 들어와. 」
「 …………. 」
「 ……죽었어? 그 사람. 」




같은 길이가 될 수 없는 잔인한 정적. 그 와중에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음에 쿠로오는 제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다시 문 너머를 보려 애쓴다. 하지만 문 앞은 자그마한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쿠로오는 문을 등지고 쭈그려 앉았다.




「 죽였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느껴져. 」
「 거짓말. 」
「 혐오감도 안 느껴지고, 사실, 그냥 현실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
「 미안. 」
「 미안해하라고 한 말 아닌데. 」
「 …………. 」
「 나, 살려 둘 때 무슨 생각했어? 」




아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것 같은 거리감에 쿠로오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문 뒤에서 짙은 한숨소리가 작게 새어 들어왔다.




「 사실, 그렇게 많은 피가 필요한 건 아냐. 」
「 응. 」
「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 정도만 마시면 되는데 장로들이 구태여 노인들을 죽인거지. 」
「 응. 」
「 근데 노인들이 더 이상 없어서 널 데려왔을 때 갑자기 아득해졌어. 」
「 응. 」
「 화도 나고, 이렇게 젊은 인간의 피를 마시고 다시 돌려보내면. 분명 마을에서 나 같은 처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못 보내겠더라고. 」




쿠로오의 입에서 푸스스 웃음이 터져 나온다. 괴물에게 내몰려졌음에도 지나치게 슬프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슬퍼 할 필요가 없었다. 괴물은 악의를 품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호의적이었다.




「 내가, 피를 준다고 하면? 」
「 …………. 」
「 내가 피를 줄 테니까, 더 이상 장로님들은 만나지 마. 」
「 생각보다 황홀한 게 아냐. 목이나 팔뚝에 구멍을 내서 피를 강제로 빨아들이는 거야. 」
「 근데, 」
「 쿠로. 」
「 넌 이미 내가 너무 필요해. 」




그 확신을 담고 쿠로오는 문을 연다.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쓴 코즈메가 보인다. 쿠로오는 그 후드를 벗겼다. 항상 느리게 깜빡이던 황금색 두개의 눈동자 대신, 땅에 가득 적셔진 비린내만큼이나 짙은 붉은색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아 쿠로오는 눈을 찡그리고 입가를 애써 양쪽으로 당겨 웃는다.




「 나도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걸 알잖아. 」




땅에서 올라오는 비린내로 속이 역해진다. 울컥울컥 올라올 것 같은 붉은 땅을 애써 보지 않으려 애쓰니 쿠로오의 가슴팍이 잘게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코즈메의 눈에, 그런 쿠로오는 지나치게 안쓰러워 보이기만 했다. 마을로 돌아가는 게 힘들어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언제든 인간의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 코즈메는 그걸 알기에 더욱 쿠로오를 만류한다. 하지만 쿠로오는 이미 결심을 굳히기라도 한 듯 제 팔뚝을 들이밀었다.




「 내, 피. 가져가, 켄마. 」




쿠로오는 기어코 괴물의 송곳니에 제 목을 박아 넣기로 결심한다.








3.0 타들어가는 이야기




 괴물과의 생활은 점점 더 불안정해져 갔다. 쿠로오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코즈메는 한계에 다다름을 깨달았다. 작은 동물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맹수까지. 코즈메는 쿠로오가 잠 든 밤을 틈 타 동물의 피를 마셨다. 코즈메의 눈동자는 황금색보다 붉은색이 되었을 때가 더 많았고 몸엔 체취가 되어버린 비린내가 그득했다.


 괴물의 본 모습에 가까워지자 오히려 갈림길에 선 건 쿠로오가 아닌 코즈메다. 쿠로오는 여전히 자신의 피를 권했고, 젊은 인간의 피를 원하는 본능은 그런 쿠로오를 해칠 것만 같이 울컥인다. 자꾸만 인간에서 벗어나려는 쿠로오의 행태가 코즈메는 불안해졌다. 괴물은 괴물로 남을 뿐, 그 어떤 것도 없다. 심지어 죽음도 햇빛에 타 죽는 분신자살뿐이다. 그런 삶을 원하고 있다. 단순히 피를 주는 것만이 아니다. 같은 괴물이 되길 요구한다.


 나흘이 되던 날이었다. 코즈메는 드디어 결심했다.




 「 마을로 데려가 줄게. 」
「 ……나, 엄마에 이어 켄마 너한테도 버려지는 거야? 」
「 아니. 돌아가는 거야. 인간으로. 」




 쿠로오의 목소리에 묘한 울음이 차오른다. 그게 초탈한 표정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 코즈메는 잠시 눈을 피했다.




 「 지금까진 괴물이었던가. 」
「 ……인간들 사이로 돌아가는 거야. 」




 쿠로오는 순순히 코즈메의 손에 잡혀 이끌려갔다. 며칠 간 함께 지내면서도 처음 잡아 본 손이다. 소름끼치게 차가워서, 당장이라도 맞잡은 손을 빼버리고 싶었지만 쿠로오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초연한 표정만큼은 감출 길이 없다. 코즈메의 입장에서 놔준다고 생각한 것이 쿠로오의 입장에선 버려진다고 생각되고 있다. 입장의 차이, 일수도 있지만. 쿠로오는 그런 코즈메가 기어코 미워지기 시작했다.




 「 안 돌아가도 되는데. 」
「 너도 괴물이 될 작정이야? 」
「 이미 마을 사람들이 괴물인 걸. 」




 그리고 문득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쿠로
오는 코즈메를 마주본다.



 「 내가, 마을로 돌아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또 그렇게 맞으면. ─다시 와 줄 거야? 」




그렇게 물어봤지만 사실 쿠로오는 안다. 코즈메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를 때 몰래 와서 위로를 해주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할지는 몰라도, 다시 눈에 띄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쿠로오는 다시 인건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괴물과는 다시는 엮이지 않을 것이다. 코즈메는 쿠로오의 손을 슬쩍 풀었다. 마을과의 인연을 끊는 것에 쿠로오를 이용하는 게 슬프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괴물이라서 놓아야 하는 이 손이다.



「 장로들한테 말해둘게. 」
「 난 켄마 네가 오는 거냐고 묻는 거였는데. 」




그리고 쿠로오는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없었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코즈메의 곁을 떠난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마을로 돌아 온 쿠로오는 그 전처럼 무조건 맞는 게 아닌 가 싶어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 쿠로오가 집에 완전히 들어갈 때 까지 코즈메는 그 자리에서 멈춰있었다. 아니, 코즈메는 이렇게 영원히 멈춰버렸다. 또 다시 숨이 막힌다. 정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끊어버렸어야 했는데, 기어코 상처를 만들고 나서야 해결을 하는 불나방 같은 자신이 미련하게만 보인다.








0.0 끝난 이야기




코즈메의 경고 같은 건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괴물의 경고보다도 쿠로오에 대한 혐오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리라. 급기야 장로들은 추모기도 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를 마을에 울리고 쿠로오를 광장 나무에 묶어 공개처형을 선포한다.


괴물에 대한 혐오감. 부정한 것을 태워버린다는 변명으로, 꼼짝없이 나무에 묶인 쿠로오는 돌을 맞는다. 제 엄마의 돌을 시작으로, 마크 아저씨, 제임스 아저씨, 제시 누나, 찰스 형. 하나 둘씩 이름을 곱씹고 눈가에 맞은 돌에 상처가 나서 눈에 피가 들어갈 것 같아 그걸 또 꾹 감고. 황동색 눈동자를 감춰버리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며칠간의 충격에 휩쓸린다.


인도된다는 두려움에 떨고, 본능적으로 남자의 기백에 거부하기도 수차례. 마을에선 버려지고 나무둥치로 기어들어가 흠뻑 젖어보기도 했다. 절절하진 않지만 몇 십 년 함께 한 부부처럼, 혹은 조금 일그러져서 서로가 유일한 반쪽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피비린내도 맡아보고, 괴물에게 팔뚝을 내미는 간 큰 짓도 해봤다. 나고 자란 마을이 사실 미친 사람들뿐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귀를 앵앵이는 환청도 들어봤다. ─수년 동안에 걸쳐 경험할 걸, 불과 며칠 만에.


그리고 지금은 죽음을 앞두고.




「 부정한 어린양을 용서하시고, 그 죗값을 생명으로 내놓으며, 주셨던 그 생명을 다시 부르심에 응답하겠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정 당한다.


쿠로오의 목이 꺾이고, 죽음을 알리는 의사의 손짓에 모두가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광장에 남은 건 피 묻은 나무와 피투성이 시체뿐이다. 즐비한 피투성이 돌 하나. 코즈메는 그걸 줍는다. 헛된 바람이었다. 인간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는 게, 욕심이었음을 알면서도 다시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인간이 얼마나 배척하는 생물인지 직접 겪었으면서, 결국 제 유일한 반쪽마저 그 홍수 안으로 밀어 넣은 꼴이 됐다.


코즈메는 쿠로오의 시체를 나무에서 풀었다. 세상 모든 생명이 그를 외면한다. 하지만 쿠로오만큼은 저가 먼저 놓지 못했다. 햇볕 아래서의 후드를 벗고, 쿠로오의 피투성이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는다. 살이 타들어간다. 몸속의 혈액이 타오르며 서서히 증발한다. 끔찍한 분신자살 속에서도 코즈메는 쿠로오의 시체를 놓지 못한다.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코즈메는 쿠로오의 몸속에 남은 모든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건 다시 햇볕 아래에서 증발한다.


푸르게 변한 시체의 피부가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동시에 가루가 되어가는 걸 보며 코즈메는 몸에 걸치고 있던 후드도 마저 벗어버린다. 햇볕에 내던진다. 모든 헛된 희망과 비참했던 괴물의 말로를 스스로 정한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었다.




「 미안. 쿠로를 사랑해서 미안해. 」




W .   쿠  잉   (  @  M  e  l  l  i  f  l  u  o  u  s  _  d  a  y  )

모티브가 되었던 노래는 슈퍼주니어의 몬스터라는 곡이었습니다!
내용을 구상하는 내내 아프고 힘들었던 일 밖에 없어서 고난을 준 것 같습니다(...)
(저는 미리 알고 있지만ㅎㅎ) 페어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