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마가 프리랜서 해커, 쿠로오가 특수 경찰인 설정입니다.
* 살해, 부상, 총격 요소가 있습니다.
쿵
쿵
쿵
켄마는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고는 한참동안이나 창문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불이 들어온 지도 곧 5분, 노트북이 보호 모드로 바뀌어 버렸다. 고요하게 창 밖의 빗소리만이 뚫고 들어와 헤집던 방에 방문이 세차게 열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쾅
이미 쿠로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위풍당당하게 문을 걷어차는 소리에 별로 놀라지 않고 켄마는 노트북을 슬며시 닫았다.
“ 아, 뭐야~ 안 놀라네? 일부러 말 안하고 왔는데.”
그야 전주가 길게 퍼졌으니까.
“쿠로, 문 부셔져.”
켄마의 담담한 말투에 쿠로오가 특유의 능글 맞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안 부셔져. 그리고 이번에 외주 들어왔다며? 회사 그만 두고 나서 받는 첫 외주 아니야? ”
쿠로오의 머리칼에 놓여진 수십개의 물방울들이 자신의 침대로 떨어지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켄마는 말했다.
“응... 음....나가기 귀찮은데...사무실 와서 팀으로 해달라네.”
새로운 사실을 알아버린 쿠로오는 놀라워하며 손에 들려진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의 정체를 밝혔다.
“오야오야. 귀찮겠네. 이 센스 있는 쿠로오씨가 요 앞 빵가게에서 애플파이 사왔다? ”
켄마는 노트북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버리고 애플파이를 잽싸게 꺼냈다.
“ 오”
가볍고 짧은 그리고 만족스러움이 담겨 있는 감탄사에 쿠로오는 후후 웃으며 종이가 뭉쳐둔 묵직한 뇌물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심경의 변화로 팀끼리 하는 외주를 고민하실까?”
종이가 뭉쳐둔 달달한 사과향이 순식간에 방안에 퍼져 켄마의 공간을 감쌌다. 놓치고 싶지 않은 지 애플파이를 계속해서 시선에 가둔 채 켄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옛날에 제안했던 회사들은 죄다 페이도 인턴이다 뭐다 하면서 약했잖아. 그래서 단번에 거절했던 건데 여기는 페이가 세고 심지어 선불이기 때문에 고민되는 거지.“
자르던 파이의 끈쩍한 겉부분은 쉽게 잘렸으나 딱딱한 부분은 생각 외로 좀 더 견고해 자르는 사람을 애먹였지만 능글거리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그런 부분이 드러날 리가 없었다.
”오오 이번에 게임 신작 나왔다고 그러더니 다급해?“
켄마는 짜증난다는 듯 말을 날리려다가 눈 앞의 이미 잘려진 파이 부분을 입 안에 넣고 굴리며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런거 아니야.“
쿠로오는 이미 확신한 듯 했지만 켄마는 그런 쿠로오의 자신감이 짜증났던건지 아니면 정말 게임 때문이라고 오해 받는 것이 싫었던건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쿵 쿵 소리가 더욱 거슬리도록 엇박자로 다리를 떨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무튼 나 이번에 조금 먼 곳으로 발령나서 이제 자주 못 와. 그거 알려주러 왔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는 입에 파이를 털어넣는 쿠로오의 입가에 지저분한 부스러기들이 붙어 켄마의 신경을 가져갔다. 그 신경은 금새 부스러기 따위가 아닌 입술에 옮겨갔고 전까지 비를 맞고 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지 촉촉하지만 지나치게 창백함을 가진 도톰함에 눈빛이 오래 머물러버렸다.
”뭐야? 켄마 왜 말이 없어? 이 쿠로오씨가 떠난다니까 착잡해? 그런거야?“
다행히 아직은 눈치를 채지 못했던건지 마냥 웃기지만 않은 소리를 꼬리가 올라간 입술에서 태평스럽게 뱉었다. 켄마 자신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잘근 씹고 있던 입술을 분위기가 얼어붙기 전에 풀어주었다.
”쿠로...“
[띠링]
켄마의 낮고 조그만 목소리와 대비되는 청아한 문자 알람메시지가 기막히게도 동시에 울림에 켄마는 입을 다물고 폰을 확인했다.
[내일부터 나오실 수 있나요? 켄마씨 담당자입니다. 못 오신다면 다른 분 찾아봐도 되니 부담 없이 말해주세요.]
문자를 빠르게 읽은 켄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타자를 치고 문자를 전송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쿠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켄마는 결심한 듯 했다.
” 나도 내일 외주 나가. “
”오, 그러면 오늘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건가? 오랜만에 켄마씨 침대에서 자볼까아~?“
어느새 절반이 사라진 애플파이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쿠로오가 턱을 괴고 켄마를 바라본 채로 후후 웃고 있음에 켄마는 쿠로오의 얼굴에 배게를 던져버리고 단호히 말했다.
”나가“
쿠로오가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소리에 켄마는 점점 줄어드는 쿵 쿵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확실히 깨달았다.
이거 내 심장소리구나.
*
여러 의미로 잠 못 이루던 켄마가 새벽 5시쯤 돼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안주머니에 무언가를 챙겨넣었다. 그리고 정말 휴대전화만 덜렁 든채로 밤새 내린 비가 고인 곳에 윤을 낸 구두가 닿지 않도록 걸음걸이를 신경써가면서 쿠로오의 집 앞으로 찾아가 이슬과 비의 잔향을 크게 들이쉬며 비장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쿠로, 나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 더벅머리를 긁으면서 뛰쳐나왔던 쿠로는 오늘은 없었다. 켄마가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 조그만 상자를 품은 채 왔을 땐 어렸을 적부터 같이 가지고 놀았던 지저분한 배구공이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시야가 흐려짐에 굴하지 않고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러 보고 나서는 배구공 뒤에 조그만 가죽 상자를 놓고 문 앞에 기대서 떠오르는 해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다 떠올라을 때 켄마는 배구공을 향해 인사를 했다.
”쿠로, 나 일 갔다 올게.“
*
외주 담당자가 알려준 역에 도착하자 자신과 같이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람들 역시 일회성으로 고용된 해커들이었다. 자신들의 일에 굉장히 프라이드가 높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곧이어 검정색 차 한 대가 다가와 켄마를 포함한 정장 무리를 데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빛이 차단된 어느 건물의 비좁은 사무실. 아무리 봐도 좋은 곳은 아닐 거 같다는 직감이 켄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담당자라는 사람이 말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가시게 되면 이 곳에 관한 말은 하면 안 되고 물론 받으신 돈들도 사라지겠죠.“
켄마를 제외한 나머지 두 해커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컴퓨터의 전원 버튼부터 켜고 각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읽고 있었다. 다만 켄마만이 부들거리며 자리에 앉지도 그렇다고 그 곳을 박차나가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 켄마가 해커로 활동한다는 걸 알았을 때 쿠로오의 반응은 매우 심각했다.
”해커? 켄마 다른 걸 알아보는 건 어때? 차라리 컴퓨터 프로그래머 어때?“
보통 크래커, 즉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블랙 해커와 달리 켄마는 화이트 해커로 주목 받고 있음을 알려주기엔 쿠로오는 이 쪽에 너무 무지한 일반인이었다. 정보 보안 전문가라고 풀어서 설명하고 나서야 쿠로오의 얼굴이 활짝 펴졌던 순간을 켄마는 잊지 못한다. 너무나도 안도한 표정이라 좋아했었는데.... 지금이라도 포기해야할까. 그러나 이미 보수로 받은 돈은 나가버렸고 그 돈은 이미 값비싸고 귀중한 곳에 놓고 와버렸다. 켄마의 머릿속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알 수 없어져 버렸을 때 총성이 연이어 들렸다. 켄마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 채 책상 밑으로 숨었다. 귀를 끊임없이 울리는 총격전에 또 다시 쿵 쿵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숨 가쁘게 달리는 토끼의 심장처럼. 지나치게 컸다.그리고 나타났다.
켄마가 계속해서 그리던 쿠로오의 얼굴.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얼굴.
그러나 쿠로오는 아니었다.
” ㅋ..켄마? 너가 왜 여기있어? 아니야..아니지? 에이 장난치지마. 코즈메 켄마.“
당혹스러움이 쿠로오 말투의 능글거림을 뚫고 나왔다가 이내 차분한 분노로 바뀌었다.
”탕“
쿠로오의 뒤쪽에서 분위기를 꿰뚫는 총소리가 들렸다. 켄마의 담당자라는 사람이 바들거리며 쿠로오의 머리 쪽을 노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작 맞은 것은 켄마였다. 재빠르게 담당자를 재압하고 수갑을 채운 쿠로오는 켄마의 부상을 확인했으나 머리 부상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케..켄마...? 아니야 이건 아니야 진짜 이건 아니야.“
켄마는 흔들리는 초점을 애써 쿠로오의 두 눈에 맞추고 말했다.
”ㅅ...사..랑..해...“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쿠로오는 그 자리에서 켄마를 들쳐 매고 구급차에 태웠으나 두개골마저 뚫고 들어간 총알을 의사도 아닌 한낱 특수 경찰인 그가 어찌 할 수는 없었고 그토록 자신만 보면 쿵 쿵 거리며 뛰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순 없었다.
대신 쿠로오의 심장은 미친 듯이 쾅 쾅 거리며 뛰고 있었다. 켄마의 주검을 보지 않을 때조차 심장은 말이 질주하듯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 앞에 놓인 배구공과 조그만 가죽 상자를 보고 들어올린 후 상자를 열었을 때 그는 오열했다. 상자 안에는 켄마의 목숨과 맞바꾼 매우 값비싼 반지가 빛을 내며 영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쿠로오 사랑해.]
라는 켄마의 글씨가 적힌 채.
주머니 속의 켄마의 유품으로 받아온 못 보던 반지의 정체를 알아버린 쿠로오는 아무말도 못한 채 얼어붙었다. 그러나 쿠로오의 심장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급박하게 뛰었다. 사실은 쿠로오의 심장은 켄마를 보지 않을 때면 언제나 급박하게 누군가를 찾든 격렬한 리듬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것에 격노해하며. 그렇게 심장은 뛴다.
아 마감을 해냈습니다!! 아 세상에 컴퓨터 고장나서 못 할 줄 알았어요...ㅠ
새드 앤딩 글을 쓰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겠네요...네...저를 죽이십쇼...
그들은 다른 평행세계에선 행복할거에요!! 그럴거에요.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저는 감사합니다. 다른 존잘님들 글 읽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