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 테츠로 X 코즈메 켄마
뱀파이어AU
인간들의 삶은 따분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고, 때가 되면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가고,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아 같은 일생을 반복시키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코즈메 켄마의 삶 또한 근본적으로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러겠거니 하고 수긍했다. 그들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짧은 일생 동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시간과 번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점이랄까.
흡혈귀. 혹은 뱀파이어. 드라큘라. 악마. 마귀.
코즈메를 지칭하는 단어는 꽤나 다양했다. 구태여 하나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니까. 뭐든 그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이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 어차피 진짜로 그의 존재를 믿는 인간은 몇 없으니 말이다.
겉으로는 인간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이 종족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한 귀찮음을 수반했다. 특히나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코즈메의 경우엔 더더욱. 인간들은 타고나길 오지랖이 다분한지라 혼자 거주를 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어린 아이는 당최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열 네다섯 살짜리가 커다란 저택에 외출조차 하지 않고 홀로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들은 코즈메를 보호소에 데려가지 못해 안달이 나곤 했다. 심지어 밤에 사냥을 나설라 치면, 가출한 청소년인줄 알고 파출소에 데려가려는 인간들도 허다했다. 물론 인간들의 눈에 안 띄게 주의를 하면 되지만, 별로 그런 일에다 에너지를 쏟고 싶진 않고.
그럼 인간들이 없는 산 속이나 황무지에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닌 다른 짐승들의 피는 맛이 없으니까. 그리고 인간의 손이 덜 탄 지역일수록 동족들 간의 영역싸움이 치열했다. 한 지역에 흡혈귀들이 몰려있으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므로 반드시 일정 수는 넘기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표면아래 존재했다. 같은 종족 내에서도 힘이 약한 존재는 쉽게 표적이 되기 마련. 코즈메는 그들과 쓸데없는 마찰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약간의 위험과 많은 귀찮음을 감수하고 인간들 틈에 섞여서 사는 것이다.
그 속에도 같은 종족이 당연히 존재했지만, 그들은 제 동족들에게 크게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외였다. 인간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이상, 그들은 본능이 전부가 아닌 삶을 살게 된다. 정체를 숨기고, 송곳니를 감춘다. 다들 제 각각의 이유로 인간 행세를 한다. 동족은 완전히 관심 밖. 그 편이 코즈메에겐 더 편했다.
사실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는 이 생활이 지겨웠다. 매번 적당한 사냥감을 찾는 것도 번거롭고. 그저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니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영생을 사는 것이, 코즈메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이 종족은 죽음조차 간단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에게 악의를 품고 사지를 못 움직이게 묶고 성수를 들이붓고 불을 지르지 않는 한은, 쉽게 휴식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그를 가리키는 말로서, 흡혈귀나 악마보다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저주받은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다른 생명체의 피를 갈구하며 살아가는 처량한 방랑자. 이 세상엔 다양한 유형의 흡혈귀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코즈메에겐 그럴 의지가 없었다. 그는, 잠 들고 싶을 뿐이다.
영원히 깨지 않을, 긴 잠에.
/ 저온 화상 /
왓카나이 현은 일본 최북단에 있는 크지 않은 현이다. 연중 기온은 타 현에 비해 낮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여름엔 크게 덥지 않고, 일 년 내내 서늘한 날씨가 이어진다. 겨울이 되면 폭설 주의보가 내려지는 것이 당연한, 홋카이도 내에서도 가장 북부에 있는 지역. 사람들은 밖에 잘 나오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인구도 점점 줄고 있는 추세였다. 인구수도 적고, 해가 적게 드는 지역. 새로운 거처로 꽤 괜찮은 축에 해당된다.
많은 지역을 전전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학교의 중요성이었다. 코즈메는 자신의 어느 부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 나이 대의 인간들은 모두 학교에 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꾸만 참견을 하는 것이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려면 그러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낮 시간대엔 딱히 할 일도 없고 말이다.
아담한 크기의 학교는 < 네코마 고교 >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사실 외향으로만 따졌을 땐, 코즈메는 고등학교보단 중학교에 가는 게 더 맞겠지만, 미성숙한 인간들은 딱 질색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덜 하지 않을까. 코즈메는 막연히 그렇게 판단했다. 전학 수속을 거칠 땐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의심을 사서 조금 곤란했으나, 완벽하게 조작된 서류들을 재차 확인한 뒤 그들은 미심쩍은 얼굴로 코즈메를 학교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다.
여러 차례의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많이 부식된 건물은 낡았지만 견고했다. 코즈메는 앞으로 제가 다니게 될 학교를 슥 훑어보았다. 네코마 고교의 전교생은 서른 명 남짓. 한 학년 당 한 반씩, 도합 3반이 있었다. 코즈메는 2학년 반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반의 인원수가 가장 적었으니까.
학교라…. 그것도 어리고 신선한 피가 흐르는 인간들이 가득한 고등학교. 별 감흥은 없었다. 자제력은 남부럽지 않았고, 사냥을 한지 삼 일도 채 되지 않았기에 그리 허기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만, 이 지루한 공간 안에서 8시간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코즈메는 한숨과 함께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내부로 들어섬과 동시에 코즈메는 강한 구토기가 일었다. 누군가가 시야를 막고 온몸을 결박한 것 마냥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근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런데,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 했다.
뭐야, 이건.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맹렬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괜찮아?”
휘청거리는 몸을 받아준 건, 네코마 고교의 교복을 걸치고 있던 소년이었다. 셔츠에 감싸진 단단한 팔이 코즈메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불에 데인듯한 고통이 몇 겹의 옷을 뚫고도 살갗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코즈메는 그의 손길을 쳐내며 창틀을 붙잡고 서서, 소년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예전에도 얼핏 느낀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길쭉한 동공은 금세 원흉을 찾아냈다. 뼈대가 굵은 손목을 휘감고 있는 묵주였다. 이 소년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건 필히 성수의 기운일 터. 코즈메의 목울대가 작게 떨렸다. 그러니까 이 지역엔, 성당이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흡혈귀의 퇴마를 목적으로 한. 그리고 이 소년은 드물게도,
“생각보다 금방 찾았네.”
“…….”
“안녕? 이 동네에 새로 왔다는 흡혈귀 씨.”
제 삶을 끝내줄 수 있는 인간이었다.
*
새벽부터 조금씩 흩날리던 눈발은 오후가 되자 폭설로 변해있었다. 발목까지 파묻힐 정도로 눈이 쌓이자, 단축 수업을 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행이었다.
본인을 쿠로오 테츠로라고 소개한 퇴마사는 3학년이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자신을 처리할 것 같이 짙은 눈을 하던 그는, 수업 종이 치자 황당하게도 본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제 교실로 사라져버렸다. 너무 어이가 없으려니 화도 나지 않았다.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코즈메는, 그러한 연유로 제 삶을 하교 후까지로 연장해야 했다.
학년이 달라서 반도 달랐지만 그래 봤자 바로 옆 교실이었기에, 성수의 기운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주위에 잠식해 있었다. 덕분에 코즈메는 교실에 있는 내내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이제 곧 종례가 끝나고 쿠로오를 만나 자신이 소멸한다면 이러한 고통도 더는 없을 거라는 게 작은 위안이었다.
학생과 선생을 비롯한 대다수의 인간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고요했다. 코즈메는 고양이 형상을 한 정체 모를 동상에 기대어 아직 나오지 않은 유일한 인간을 기다렸다. 굵은 눈발이 뺨을 휘갈겼지만 < 추위 >는 코즈메에겐 해당하지 않는 감각이었다. 그저 시야를 가리는 눈송이들이 거슬릴 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쿠로오는 해가 슬슬 기울어 갈 때쯤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단박에 코즈메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온통 새하얀 배경 속에서 길다란 검은 코트 차림의 소년만이 이질적으로 보였다. 일정한 속도로 발자국이 뚝뚝 새겨졌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입김이 입술 주변에서 흩어졌다. 피부 아래에선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을 터였다. 군침이 돌았다. 인간은 이토록 매력적인 존재였다. 그 이끌림 마저 역겨웠지만.
마침내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쿠로오는 고개를 기울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발을 멈추었다.
“오야? 설마, 기다렸어?”
“응.”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소리에 쿠로오는 흐음- 길게 콧바람을 뿜으며 턱을 문질렀다. 그는 흡혈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퇴마사니까.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는 그 여유로운 자태에서 그가 그 동안 쌓아온 내공이 보였다. 코즈메는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뇌가 눅눅해질 정도로 성수의 기운이 독했다. 코즈메는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쿠로오는 고개를 살풋 기울였다.
“몸을 사리는 게 좋을텐데.”
“…….”
“이미 눈치챘겠지만 난 네 천적이라서 말이야.”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혈액, 다시는 맛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는 짐짓 협박이라도 하듯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코즈메는 콧웃음을 쳤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긴 말할 것도 없었다. 코즈메는 순식간에 다가가 쿠로오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달큰한 살 냄새와 지독한 성수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쿠로.”
“…너무 친근하게 부르는데.”
“나를 없앨 수 있지?”
쿠로오는 미동도 없이 제게 매달린 코즈메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동공 안에 산 시체가 가득 들어찼다. 시체는 죽음을 먹으며 산다. 비참하게 목숨을 연명해 나가며, 정작 자신은 죽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걸 이뤄줄 수 있는 인간이 눈앞에 있다. 코즈메는 난생 처음으로 절박해졌다.
“그렇게 해줘.”
“…….”
“부탁이야.”
제게 목숨을 구걸하던 인간들은 수도 없이 봐왔다. 자신은 어땠던가. 그들을 보며 희열을 느꼈을까. 아니면…,
“꼬맹아. 이름이 뭐지?”
그 진심에 관심조차 없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가 제 삶을 끝마쳐 줄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코즈메는 손에서 힘을 풀지 않고 대답했다.
“……코즈메, 켄마.”
수백 년을 달고 살았던 지긋지긋한 이름이다. 지쳤다. 그러니 이제 그만, 소멸 시켜줘.
“그래, 켄마.”
“…….”
“끝내달라고?”
“응….”
“그럴까?”
쿠로오는 웃으며 덧붙였다. “난 언제나 친절하거든.” 다정한 목소리에선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퇴마를 업으로 삼는다면서 흡혈귀를 향한 그들 특유의 분노도, 혐오도, 그 어떠한 나쁜 감정들도 느낄 수 없었다. 어려운 상대였다. 어쩌면 말씨름이 길어질지도 몰랐다. 그런 사태는 완전히 사양이다.
“장난치는 거 아니야. 정말 죽여줘.”
“…….”
“안 그러면 내가 널 사냥할거야.”
“왜?”
그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을 했다. 어줍잖은 핑계는 통하지 않을 거다. 코즈메는 눈동자를 굴리며 적당한 대답거리를 찾았다.
“내 존재를 아는 인간이니까.”
그는 아아, 하며 납득했다. 그러나 정작 코즈메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해봐.”
도발이라. 턱을 치켜든 자세는 오만했다.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하는 걸까. 아님 단순히 제 앞의 상대가 약해 보여서 방심하는 걸까.
못 할 줄 알고.
코즈메의 손은 눈 깜짝할 새에 코트 깃 위로 드러난 쿠로오의 목을 움켜쥐었다. 쿠로오는 갑작스레 숨이 막히자 잠시 쿨럭였지만 곧 차분함을 되찾고 코즈메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어디 해보라는 듯 오히려 고개를 틀어 목을 내주었다. 훤한 목이 포식자의 시야 아래 놓여지고, 그를 방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손바닥 아래로 생명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닿은 피부는 뜨거웠고, 심장의 고동 소리는 거셌다. 먹잇감을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쿠로오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건방져.
코즈메는 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았다. 그는 고개를 꺾어 목가로 다가가다 말고 돌연 쿠로오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왜 멈춰?”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확신의 미소였다. 쿠로오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졌다. 졌다. 애초부터 승부욕이 들지도 않았지만.
“성수 냄새 나서 역해.”
코즈메는 변명하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반쯤은 사실이지만. 하하, 웃음소리가 짧게 코즈메의 귓전을 울렸다.
“내일도 여기서 만나.”
“싫어. 그냥 지금 당장…,”
“내일 모레도.”
“…무슨 소리야?”
“매일 만나자는 거야.”
“…….”
“내가 널 없애든지, 네가 날 사냥할 때 까지.”
이 인간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코즈메는 미간을 좁히며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진심이야?”
“응.”
“왜?”
대체, 왜?
본인 입으로 말했었다. 자신의 천적이라고. 그 말인 즉, 그도 흡혈귀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건데. 이 자리에서 처참하게 불태워버려도 부족할 참에 매일 만나겠다니. 이유가 뭘까. 유예 기간이라도 주는 걸까. 회고하라고?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추측과는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이게 무슨.
놀리는 걸까. 그래, 놀리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훤히 알면서도 코즈메는 동요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내일 보자.”
물이 반쯤 빠지다 만 금발을 그가 장난스레 흐트러뜨리고 떠날 때까지 코즈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웬만한 인간들은 다 뻔했지만 가끔 이런 돌연변이들이 존재했다. 흡혈귀들이 인간들의 세상에 매료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코즈메는 방금 막 그 사실을 깨달은 참이었다.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자국이 찍혔다. 보폭이 넓었다.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은 점차 작아지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코즈메는 이 만남이 길어질 것이라고 직감했다. 자신은 그를 사냥할 생각이 없으며, 그는 자신을 끝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이쯤 되니 의문이다. 왜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죽이지 않았을까. 정말로, 제 취향이라서? 그럼 대체 퇴마사는 무슨 목적으로 하는 거지? 코즈메는 처음으로 한 인간에 대해 궁금해졌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코즈메가 이 지역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 안녕? 이 동네에 새로 왔다는 흡혈귀 씨. > 제 앞에 성수 기운을 노골적으로 풍기며 나타나 산뜻하게 인사까지 해주었으니까.
이 근방에 성당이 있다면 그 소년이 아닌 다른 퇴마사들도 더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제 염원대로 잠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즈메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여전히 눈이 내렸다. 새하얀 풍경 위로 검은 코트의 소년이 덧입혀졌다. 멋대로 난입해버린 걸로도 모자라 제 의식을 쥐고 놓아주질 않는다. 재미…, 있겠는걸. 매끄러운 눈동자 표면에 반짝, 흥미가 감돌았다. 마치 게임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코즈메는 작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뭐…. 하루, 이틀쯤은 더 살아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호기심 때문일까. 목구멍이 홧홧하게 끓어올랐다. 하얀 눈송이가 메마른 삶에 멋대로 파고들어 조각조각 갈라진 영혼을 적셨다. 그리고 가득 채워버린다. 백(白)색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흑(黒)색으로. 다른 생각은 아예 못해버리게.
이미 죽은 심장에 저온 화상이 뜨겁게 번졌다.